작가 노트

내가 보이지 않는 것을 찍으려는 이유는 자명하다.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을 증명하려고 하는 것이다. 사진으로, 사진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진은 태동부터 물성이 있는 것의 존재를 인증시키고 납득시키는 수단으로써 기능해 왔다. 사진의 사실성은 공정하지 않은 손의 개입 없이 객관적으로 있는 현실 그대로를 복제함으로써 권력을 획득했다. 사진을 찍고, 찍혔다는 것은 그곳, 거기에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냄과 더불어 그 사진 속의 현실 혹은 사건이 존재했다는 것을 말한다. 사진이라면 증명의 수단으로써의 무조건적인 믿음을 갖게 되고, 보이는 것의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사실적인 이미지를 보며 한번 더 그 사실을 입증했다. 

하지만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우리는 가시성, 물성이 부재한 무형의 것들의 존재를 입증해 냈다. 우리의 눈으로는 물리적으로 볼 수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들. 아니, 그 훨씬 이전에서부터 우리는 무형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생각, 관념, 맛, 향기, 소리 등은 태초부터 존재하던 것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기록될 수 없고, 훗날 어떠한 가치를 창출해 내거나 사용할 수 없다. 그 누구도 내가 10년 전에 맛본 솜사탕의 맛을 돈 주고 사지 않는다. 

인식은 하고 있지만 보이지 않으니 믿을 수 없는 것들을 찍어내고 싶다. 존재유무는 명확하지만 그의 개념을 가시화시키고 싶다. 그리고 반대로 사진의 무차별적인 당위성을 해체하고 무조건적, 맹목적 믿음을 배반하라고 말하고 싶다. 모든 사진은 주관적이고 사진가의 특별한 시선과 사상이 개입되어 있다. 이보다 더 주관적인 것은 없을 것이다. 사진가의 고유한 시선은 그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독창적이고 배타적이다. 

사진의 편집기술이 나날로 발전함에 따라 더 이상 사진은 사실성, 현실성, 현존성을 초월하여 증명성을 탈피했다. 더 이상 사진은 카메라 렌즈를 통해 현실의 상을 재현하는 것이 아닌, 무수한 편집과 재생산을 통해 창작과 표현의 수단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도 사진의 사실성의 유령에 결속되어 있다. 사실성은 가장 위력 한 증거이자 권력을 휘두른다. 

그럼 어떻게 이 보이는 권력을 해체시킬 수 있는가? 사람들은 사진이 아주 세심한 선택적 결과임을 자주 망각한다. 사진은 사실성으로 위장하여 진실성을 부여한다. 하지만 우리는 사진이 매우 많은 선택지 중 하나의 선택임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항상 사진의 진위에 대하여 의심해야 한다.